로봇은 끝내 박스를 접지 못했다.
2026년 3월, 베이징의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애니버스(Anyverse, 无界动力) 사무실. 쇼룸이 아니라 개발자들이 코딩하고 로봇을 세팅하는 R&D 공간 한가운데에서였다. 여러 사람이 지켜봤고, 개발자들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소용없었다.
엔지니어라면 다 아는 ‘데모의 법칙’이다. 평소엔 잘 되다가도 꼭 중요한 날, 여러 사람이 지켜볼 때 안 된다. 개발자들은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려고 로봇을 다시 세팅하며 한참을 끙끙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나 민망함보다 ‘이게 왜 안 되지?’ 하고 파고드는 표정이 먼저 보였다.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은 건,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피지컬AI 견문록」은 중국 현장을 직접 다니며 보고 듣고 물어본 것을 바탕으로 중국 피지컬 AI의 구조를 하나씩 뜯어보는 연재다. 3월 베이징에서 7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를 거쳐 9월 옌타이까지 이어졌고, 앞으로의 현장도 계속 담아 갈 예정이다. 이번 편은 베이징과 상하이의 장면을 따라가고, 옌타이 이야기는 3편에서 이어진다. 질문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국 로봇, 정말 일할 수 있는가.
1. 두 시선 사이에서
중국 휴머노이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건 출장 전에도 알고 있었다. 뉴스와 영상에는 걷고, 뛰고, 춤추고, 무술을 하는 로봇이 끝없이 올라왔다.
3월 베이징 일정 중 한 행사장에서도 그랬다. 작은 휴머노이드 한 대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참석자 수십 명이 둥글게 둘러서서 일제히 휴대폰을 들었다. 나도 그 원 안에 서서 영상을 찍었다. 그러면서도 같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저 로봇은 춤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중국 로봇 이야기를 꺼내면 반응은 대개 둘로 갈렸다. 하나는 불안이다. “중국이 이제 다 따라잡은 것 아니냐.” 다른 하나는 평가절하다. “춤추고 무술하는 것 말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있느냐.”
솔직히 나도 두 번째 질문에 더 가까웠다. 걷고 뛰는 것과 공장에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데모는 한 번 잘하면 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같은 작업을 수백 번, 수천 번 해도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출장 전에는 주로 중국 로봇 한 대 한 대의 기술 수준을 보려고 했다. 이 회사의 휴머노이드가 보스턴다이내믹스보다 나은가, 못한가.
세 번의 출장을 다녀온 지금, 그 질문 자체가 조금 빗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로봇 한 대의 완성도로는 중국 피지컬 AI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현장의 장면으로 풀어 보려 한다.
2. 쇼에서 일로: WAIC의 ‘로봇멍’
7월 상하이 WAIC의 체화지능관에 들어섰을 때 든 첫 생각은 단순했다. 로봇이 정말 많다. 휴머노이드, 4족 보행 로봇, 로봇 손, 촉각 센서, 산업용 로봇까지 피지컬 AI 기업이 한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이번 대회에 나온 체화지능(Embodied AI) 단말만 208종이었다[1].
처음엔 하나하나 신기했다. 그런데 계속 돌다 보니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이 정도 수준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왜 이렇게 많지? 한두 기업이 치고 나가는 게 아니라, 꽤나 높은 수준에 도달한 회사가 많았다.

예전에는 휴머노이드가 걷거나 사람처럼 팔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뉴스였다. WAIC에서는 그 정도 기능을 보여주는 회사가 너무 많아서, 중간부터는 로봇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걷는지를 보지 않게 됐다. 대신 질문이 바뀌었다. 이 로봇은 무슨 일을 하지? 실제 고객은 있나?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지? 데모인가, 현장에 들어간 건가?
전시장 곳곳에는 ‘로봇멍’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 있었다. 물멍, 불멍처럼 사람들이 별다른 목적 없이 로봇이 움직이는 모습을 한참 서서 바라봤다. 가장 많은 인파를 모은 건 로봇 격투 같은 볼거리였다. 하지만 영상으로 이미 많이 본 장면을 눈앞에서 다시 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내가 더 오래 서 있던 곳은 따로 있었다. 마치 주최 측과 참가 기업들이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부스마다 ‘로봇이 일하는 장면’을 하나씩 만들어 놓았다. 어떤 곳은 요리를 했고, 어떤 곳은 휴머노이드가 약을 내주는 무인 약국을, 또 어떤 곳은 물류 작업을 보여줬다. 기술 완성도는 제각각이었지만 메시지는 같았다. “우리 로봇은 이렇게 잘 움직입니다”가 아니라 “우리 로봇은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휴머노이드가 오랜 시간 축적된 최고 수준의 로봇과 같은 수준이라고 느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바라보는 각도만큼은 분명히 쇼에서 일로 옮겨 가고 있었다.
한 달 뒤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로봇대회(WRC 2026)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올해 전시장의 화두는 단순 시연이 아니라 ‘실제로 일하는 로봇’이었다. 로봇이 커피를 내리고, 택배를 분류하고, 용접 자재를 투입했다. 물류, 생산라인, 순찰 점검, 매장 서비스 네 분야에서는 이미 로봇이 쓰이고 있었지만, 대규모 도입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많지 않았다[2]. 로봇은 지금 ‘쓸 수 있는’ 단계에서 ‘실제로 쓰기 좋은’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3. 실패 다음의 한 수
다시 3월의 베이징으로 돌아가 보자. 박스 접기에 실패한 애니버스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실패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문객을 완성된 쇼룸이 아니라 개발자들이 일하는 공간 그대로에 들였다.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코딩하고, 로봇을 세팅하고, 테스트하고 있었다. 완성품 전시라기보다 연구실에서 개발 중인 제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시연이 한 번 실패했다고 크게 당황하지도 않았다.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보여주고, 다시 고친다.” 그런 패기였다.
같은 출장에서 방문한 휴머노이드 기업 갤럭시아(GALAXEA, 星海图)에서는 또 다른 장면을 봤다. 이곳에서 본 시연은 박스 접기보다 훨씬 어려워 보이는 수건 개기(Fabric Folding)였다. 처음 한 번은 로봇이 수건을 제대로 접지 못했다. 그런데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차분하게 다시 시도했고, 결국 끝까지 접어냈다.

그날 나는 두 종류의 실패를 본 셈이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데모에 실패했지만 다시 개발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로봇이 작업에 실패했지만 다시 시도했다.
이 두 장면이 데모와 공장의 차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데모에서는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패했을 때 다시 판단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 공장이 로봇에게 묻는 것은 능력(Capability)보다 반복성(Repeatability), 강건성(Robustness), 안전성(Safety)이다.
| 구분 | 전시장 데모 | 공장·현장 투입 |
|---|---|---|
| 성공의 기준 | 한 번 해내는 것 | 천 번째도 똑같이 해내는 것 |
| 실패의 의미 | 피해야 할 사고 | 복구하고 이어가야 할 상황 |
| 대상 물체 | 미리 준비된 물체 | 처음 보는 물체, 매번 다른 배치 |
| 환경 | 통제된 무대 | 조명·온도·부품 편차가 바뀌는 라인 |
| 기록 | 영상과 박수 | 재현 가능한 로그와 결과 데이터 |
도표의 마지막 줄, ‘기록’은 갤럭시아 시연대 뒤에서 실감했다. 앞에서 보면 로봇 혼자 일하는 것 같지만, 뒤로 돌아가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로봇 받침대 옆에는 PC 본체와 키보드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전원선과 케이블이 얽혀 있었다. 모니터에는 터미널 로그가 쉼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현장으로 가려는 로봇 뒤에는 이렇게 실시간으로 쌓이는 기록이 붙어 있다.

중국 업계도 이 기준을 잘 안다. 4월 보아오 아시아 포럼에서 한 휴머노이드 기업 창업자는 산업 현장의 작업 속도, 성공률, 안정성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며 성능을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3]. 그래서 요즘 중국 로봇 기업들이 내세우는 숫자도 달라졌다. WRC에서 한 산업용 로봇 기업은 자사 로봇이 앞선 전시회에서 사흘간 총 21.5시간 동안 용접 자재 투입 작업을 오류 없이 수행했다고 소개했다[2]. 몇 번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몇 시간 동안 실패하지 않았느냐를 자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면, 그건 이미 완성된 로봇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계속 밖으로 꺼내 놓고, 실패를 감추지 않고, 아주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기는 힘 때문이다.
4. 끝에서 시작하는 혁신
갤럭시아에서 본 것은 시연만이 아니었다. 사무실 한쪽에는 ‘务实创新(실용적 혁신)’이라는 문구가 손글씨로 걸려 있었다. 연구자로서 내가 평소 지향해 온 방향과 같은 말이어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务实创新(실용적 혁신)은 ‘현실에 발을 딛고 하는 혁신’쯤으로 옮길 수 있다. 아래 두 줄이 그 뜻을 풀어 준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사업의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하고, 혁신은 天马行空(뜬구름 잡기)가 아니라 以终为始(끝에서 시작하기)라는 것이다. 天马行空은 천마가 하늘을 달린다는 말로, 여기서는 목적 없이 아이디어만 펼치는 뜬구름 잡는 혁신을 가리킨다. 以终为始는 끝을 시작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원하는 결과를 먼저 정하고, 거기서 거꾸로 길을 찾으라는 말이다.
내 눈에 더 오래 남은 건 전구 옆에 적힌 3.1415926이었다. 수학의 π는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제품으로 만드는 π에는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를 끝으로 삼을지 가장 적절하게 정하고, 그 끝까지를 실제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든다. 나는 이 패널을 그렇게 읽었다. 연구는 끝없는 π를 좇을 수 있지만, 현장에 들어가는 기술은 끝을 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끝을 정직하게 정하는 모습은 발표 자료에서도 보였다. 자료에는 정밀도와 속도의 한계가 먼저 적혀 있었고, 대신 적은 데이터로 새 작업을 익히는 범용성을 내세웠다. 공장이 요구하는 정밀도와 속도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그 거리를 숨기지 않고 말한 셈이다. 지금 도달할 수 있는 끝을 정직하게 정하고 그 안에서 쓸모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것 역시 以终为始(끝에서 시작하기)다.
실용을 따지는 감각은 전시장에서 오간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WAIC 전시장에서 자주 들은 질문은 ‘얼마나 빠르냐’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반도체에서 같은 모델을 돌렸을 때 토큰을 얼마나 쓰고, 성능과 처리 효율이 얼마나 나오느냐였다.
이 질문이 꽤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자주 듣던 질문은 주로 “얼마나 빠르냐”, “성능이 얼마나 나오느냐” 같은 절대 성능에 관한 것이었다. 하드웨어 조건이 제각각인 중국 현장은 이미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성능이 낮은 하드웨어에서도 모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릴 수 있는가. 중국이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는 뜻은 아니다. 처한 조건 때문에 효율이라는 문제를 더 빨리, 더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따져 보면 이것도 같은 이야기다. 모델 성능은 끝없이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매일, 오래 쓰려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한한 성능이 아니라 적정한 성능을 지속 가능한 비용으로 내는 것, 적정기술로서의 AI다. 토큰 가성비를 묻던 그 질문은 반도체 위에서 务实创新(실용적 혁신)이 띤 모습이었다.
전시장의 간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IT 인프라 기업 신화싼(新华三, H3C)은 부스 꼭대기에 ‘打造Token极致性价比(토큰의 극한 가성비를 만든다)’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안쪽 벽에는 ‘场景赋能 释放Token行业价值(적용 현장에 힘을 실어 토큰의 산업 가치를 끌어낸다)’라는 문구가 이어졌다. 2장에서 본 场景(적용 현장)이 여기서는 토큰 가성비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가장 좋은 성능이 아니라 가장 좋은 가성비가 간판이 되는 것, 그것이 올해 WAIC의 또 다른 풍경이었다.

5. 한국의 첫 자리: 믿고 쓸 수 있음을 증명하는 기술
귀국한 뒤 회사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두 문장이었다. “중국 로봇이 생각보다 훨씬 많고, 아주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로봇이 많아지면 결국 검증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상하이에는 휴머노이드를 시장에 내보내기 전에 안전성과 신뢰성 같은 여러 지표로 평가하고 출시를 지원하는 시설이 이미 들어서 있다. 로봇을 만들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단계는 지나가고 있다. 로봇이 많아질수록 검증과 테스트의 문제는 오히려 더 커진다.
기준도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3월 발표하고 6월 1일부터 시행한 피지컬 AI 벤치마크 시험방법 표준(YD/T 6770-2026)은 체화지능 분야의 첫 업계 표준이다. 시뮬레이션과 실제 환경 모두에서 체화지능 시스템의 ‘인지, 판단, 실행’ 전 과정을 같은 틀로 시험하고 비교한다[4]. 6월 29일 항저우에서는 로봇이 입학해 교육을 받고 기술 인증서를 받은 뒤 현장에 배치되는 ‘로봇 학교’까지 문을 열었다[5]. 이 이야기는 3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하드웨어의 차이가 줄고 비슷한 기능의 로봇이 쏟아지면, 최종 사용자는 결국 다른 질문을 던진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누가 더 반복해서 성공하는가. 누가 실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동작하는가. 고장이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중국 현장을 직접 보고 난 뒤, 우리가 해 오던 테스트와 검증, 신뢰성이라는 영역의 무게를 오히려 더 크게 느꼈다.
AIWORKX(에이아이웍스)가 7월 WAIC 한국AI관에서 DeviceProbe™를 처음 해외 무대에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반도체나 평가보드를 실제 장비에 연결해 원격으로 테스트하고, 결과를 표준화된 데이터로 남기는 검증 플랫폼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흐름이 시작됐다. 대구에는 2030년까지 국내 첫 휴머노이드 로봇 안전인증센터가 들어서고, 동적 안정성과 AI 신뢰성, 사이버보안을 평가하는 체계를 갖출 예정이다[6]. 유럽연합(EU)의 새 기계 규정도 2027년 1월 20일부터 시행되면서, 스스로 학습하며 동작이 바뀌는 AI 기반 기계의 안전까지 따지기 시작한다[7]. 로봇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만큼, 그 로봇이 안전하고 믿을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시장에 들어가는 조건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이 중국보다 더 많은 휴머노이드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어디에서 강한지 정확히 보고, 우리가 반드시 경쟁해야 할 곳과 활용할 수 있는 곳, 반드시 우리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기술을 구분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그중 한국이 가져갈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 검증, 신뢰성, 산업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처럼 로봇을 ‘만드는 것’에서 ‘믿고 쓰는 것’으로 넘겨주는 기술이다. 만드는 기술이 많아질수록, 증명하는 기술도 필요해진다.
맺으며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본 장면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베이징에서는 사람이 데모에 실패했지만 숨기지 않았고, 로봇이 작업에 실패했지만 다시 시도했다. 상하이에서는 로봇들이 춤과 격투를 넘어 요리하고, 약을 건네고, 물건을 나르려 하고 있었다.
중국 피지컬 AI의 경쟁력은 이미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기술을 빠르게 다음 단계로 옮기는 데 있다. 이 시리즈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중국을 막연히 두려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속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국의 자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벽에 걸려 있던 π를 다시 떠올린다. 연구의 π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현장에 들어가는 로봇의 π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 출장 중 만난 중국 기업들은 그 끝을 빠르게 정하고, 닿지 못하면 다시 고친다. 그런데 끝을 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남는다. 그 끝에 정말 닿았는가. 천 번째 시도에서도, 처음 보는 물체 앞에서도 같은 결과를 내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이 검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먼저 설 수 있는 자리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자주 묻는 질문
Q1. 피지컬 AI란 무엇인가요?
화면 속에서 글과 이미지를 다루는 AI와 달리, 로봇처럼 몸을 갖고 현실 공간에서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AI를 말합니다. 중국에서는 ‘체화지능(具身智能)’이라고 부릅니다.
Q2. 중국 휴머노이드는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나요?
전시장에서는 요리, 약국, 물류처럼 일하는 장면을 앞다퉈 보여주고 있지만, 데모와 지속적인 현장 운영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느냐’보다 ‘몇 번이나, 어떤 환경에서 반복할 수 있느냐’입니다.
Q3. 데모와 실제 현장 투입은 무엇이 다른가요?
데모는 준비된 물체로 한 번 성공하면 되지만, 현장은 처음 보는 물체와 바뀌는 환경 속에서 수천 번 같은 결과를 내야 합니다. 실패했을 때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과 재현 가능한 기록도 필요합니다.
Q4. 중국 로봇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로봇 한 대의 완성도보다, 만들고 보여주고 실패하고 다시 고치는 개선 사이클의 속도입니다. 촉각 센서, 모터, 로봇 손 같은 부품을 각자 제품으로 파는 세분화된 생태계가 그 속도를 받쳐 줍니다. 이 생태계 이야기는 2편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Q5. 한국은 어디에서 경쟁해야 하나요?
더 많은 로봇을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경쟁보다, 검증, 신뢰성, 산업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처럼 로봇을 ‘믿고 쓸 수 있게’ 만드는 영역이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참고 문헌
- 커촹반일보(科创板日报), 「直击2026WAIC:超300台真机扎堆,具身智能离GPT时刻还差海量物理数据」 (2026.7.18) — https://www.cls.cn/detail/2430120
- 커촹반일보(科创板日报), 「WRC 로봇 이제 현장에서 일한다, ROI 따지는 단계로」 (2026.8) — https://baijiahao.baidu.com/s?id=1874094935414380298
- 통신산업망(通信产业网), 「보아오 아시아 포럼, 휴머노이드 로봇 현장 적용까지 세 가지 과제 남아」 (2026.3.25) — https://news.sina.com.cn/c/2026-03-25/doc-inhseupu0991756.shtml
- 인민우전보(人民邮电报), 「我国具身智能领域首份行业标准于6月1日实施」 (2026.4.1, 신화망 전재) — https://www.news.cn/tech/20260401/20e6b03022bb49ef991e19b1ccb9bb6d/c.html
- 펑파이신문(澎湃新闻), 항저우 로봇학교 개교 보도 (2026.6) — https://m.thepaper.cn/newsDetail_forward_33484243
- 전자신문, 「대구시, 휴머노이드 로봇 안전인증센터 구축사업 본궤도」 (2026.8.5) — https://m.etnews.com/20260805000289
- European Union, Regulation (EU) 2023/1230 on machinery (2027.1.20 적용) — https://eur-lex.europa.eu/eli/reg/2023/1230/oj